인생은 만남이다.
만남 중에는 스승과의 만남이 중요하다.
그런데 스승과의 만남은 부모와의 만남과는 다른 면이 있다.
부모와의 만남은 운명적이지만 스승과의 만남은 어느 정도 선택적이기 때문이다.
제자에게 스승은 어떤 의미일까.
그리고 스승에게 제자는 어떤 의미일까?
스승은 농부, 제자는 씨앗의 관계가 아닐까?
스승이 가르침의 씨앗을 뿌려주면 제자는 배움의 씨앗을 발아하며 각자도생한다.
우리는 같은 시간 한 곳에서 스승으로부터 가르침을 받았지만
지금 우리는 서로 다른 인식의 시간과 서로 다른 공간에서 각자 뿌리를 내리며 살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매력적인 손을 가졌다.
적자생존을 일찌감치 실천해 왔다. 새기자생존- 시각적 효과 극대화.
우리는 스승으로부터 칼과 붓, 학문과 교육을 통하여 새로운 시선을 갖게 되었다. 스승은 영혼의 부모이다.
대중적 이미지를 중시하는 예술은 low art이다. 서예는 학문의 거름이 없이는 자랄 수 없는 귀족적 예술이다. 그래서 서예는 high art라고 할 수 있다.
우리는 모두 그 누군가의 제자이자 동시에 누군가의 스승이기도 하다.
오늘 우리는 배우고 가르치는 사제의 고리를 확인하는 전시회를 통하여 우리를 발견한다.
우리는 서로 서예 창조 활동을 통하여 서로의 이정표를 확인하고 이따금 정을 나누곤 한다.
우리는 짓고 쓰고 그리고 새기고 때로는 연구하며, 더러는 작품 수준으로, 작업량으로, 개성적 안목으로, 미학적 가치로 자기를 드러내고 있다.
알을 스스로 깨고 나오면 병아리가 되지만 남이 깨어주면 계란프라이가 된다는 말이 있다. 그러나 병아리로 태어났다고 좋아할 일이 아니다. 태어나기까지 어미닭의 따뜻한 품에 있었기에 가능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참스승은 스스로 자립할 수 있는 제자를 기른다.
나무가 큰 나무 밑에서 자라지 못하듯 우리는 어느 정도 스승으로부터 떨어져 나름의 그늘을 내리며 살고 있다.
작가가 된다는 것은 끝까지 가 보는 것을 의미한다. 그 길에서 우리는 우리의 창조물을 보고 크게 감동할 줄 알아야 한다. 본인이 감동하지 않는 작품을 보고 그 누가 감동하고 기쁨을 얻고 행복해 하겠는가.
예술은 단판 승부를 끝나지 않는다. 어쩌면 죽어서도 끝나지 않을 수도 있다. 빛나는 재능도 일찍 시들고 사람들의 관심은 너무 빨리 바뀐다.
서예는 작가의 호흡이 길어야 할 수 있다. 열심히 하면 어떻게 되겠지 하는 마음으로 예술을 할 수 없다.
미다스의 손이 지나가면 황금으로 우리의 손이 지나가면 예술로 남길 바란다.
사제 9명의 실내악 오케스트라 연주에 많은 관심 가져주기를 바란다.